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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야기하다

모더니즘과 예술

by kendoo 2020. 3. 3.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과학에서는 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가 양자 역학을 이용하여 '사물의 불확실성'을 증명했으며 그로인해 그 동안 우리가 믿어 왔던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울러 사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도 바꾸어 놓았다. 또한 사진기의 발명은 회화의 관념을 크게 변화시켰는데 사진기가 갖고 있는 '사실을 포착하는 특성'은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주류였던 '사실주의(Realism)'의 '사실 재현'을 능가했으며 사진기의 등장은 '사실주의'라는 주류의 회화 장르를 일순간에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결국 화가들은 회화에 있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던 태도를 버리고 관념을 반영, 즉 그들의 생각이나 개념을 재현하고 표현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술에서는 과학이라는 분야와 보완적 교류를 통해 예술의 '새로운 시각'을 강조한, 빛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시각 관념을 표현한 폴 세잔(Paul Cézanne)에 의해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모더니즘의 물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 리오타르(Jean F Lyotard)는 회화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개연성을 '서브라임(Sublime)'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하였는데,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표현하는 숭고한 정신이 바로 '서브라임'이며 이는 곧 '추상(Abstraction)'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즉 사진의 기능에 밀려 더 이상 사물의 객관적 사실 재현이 무의미하게 된 회화에 있어서, 회화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개념과 같은 표현할 수 없는 실체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방법이 바로 '추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기계에 의한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 반복 복제가 가능한 사진은 상대적으로 복제가 쉽지 않은 회화의 독창성(Originality)이라는 본질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이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1934년 「기술의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복제된 '사본과 모조(Reproduction)'가 '실제(Reality)'를 대체하는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을 재생 또는 '모조의 실재'라고 규정하였다. 더욱이 과거에는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품이 '독창적이고 유일하다'는 근거로 아우라와 고유의 권위가 인정되었는데, 이러한 권위를 카리스마적 후광에 지나지 않으며 마술적인 아우라라고 했다. 

 

이처럼 복제된 사본이 대량으로 만들어짐에 따라 아우라와 권위는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미래는 독창성이 파괴된 단일 문화(Mono-cultural)의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일 문화의 경향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단일 문화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고 상대적으로 독창성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벤야민은 아우라의 파괴가 독창성의 파괴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바꾸고 예술 작품이나 예술가, 대중 들이 예술에 대한 수용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았다.

 

모던한 창조적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한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과학과 기술중심, 이성주의를 통해 과거와 전통적인 사회관과는 전혀 다른 관념의 사회, 경제 중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자는 혁명적 정신이 구축되었으며 여러 현상 및 사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바람은 유럽 전역에 퍼져 새로운 사회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따라서 모더니즘이란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정신 세계로서 새로운 역사를 움직이는 강한 에너지인 동시에 시대적 사조의 흐름이였던 것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성향과 내용을 보면 첫째, 과거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새로움(New)이 있어야 하고, 둘째, 완전한 예외성(Exceptional)을 갖고 있어야 하며, 셋째, 그 구조는 다분히 아카데믹한 엘리트 의식(Elitism)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넷째, 편집증적일 정도로 깊고 어려운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세련되면서도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모더니즘에서는 사회의 흐름(Social Dynamics)을 바꾸어야 하는 목적 의식이 중요하기 떄문이다.

 

유일한 것을 의미하던 과거의 독창성이라는 개념은 복제된 사본이 등장함으로써 그 의미가 약화되었고 새로운 것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은 독창성의 의미를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가장 먼저 시작하였는가?'로 바꾸었다. 유일하기 때문에 독창적이라는 의미는 퇴색하고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독창적이라는 관점에서 독창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초기에 모더니즘은 젊은 지식인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었는데 이를 주도한 세력들은 '도시 중심'의 '아방가르드 엘리트( Avant-garde Élite)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주된 사상인 마르크시즘은 20세기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는 젊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성(性)의 고정관념과 관습에 혁신적이니 변화를 일으킨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크게 기여하였고, 니체(Nietzsche)의 철학은 문학과 음악,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으며 이처럼 신학문과 새로운 사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대상들은 당연히 엘리트 계급이였으며, 따라서 '엘리트 계급'이 주도하였던 모더니즘이 아카데믹한 내용을 강조하였던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모더니즘 운동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유럽 전체와 미국으로 퍼져 나아가 국제화에 성공하였으며, 당시 기술의 발전이 이룩한 전신, 전화 등의 커뮤니케이션 수단 발달과 비행기, 기차, 자동차 등의 운송 수단의 발전, 1912년 결정된 국제 기준 시간 등이 확산 속도에 크게 기여했으며 첫번째 국제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력을 갖게된 미디어의 힘은 모더니즘이 주류 문화의 위치를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미디어를 통해 모더니즘을 바라본 대중들은 엘리트들이 강조하던 모더니즘의 근본 취지 또는 의미보다 미디어가 다루는 모더니즘 예술, 그 당시 아이콘인 파블로 피카소, 르 꼬르뷔지에 등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대중들의 높은 관심은 이들이 모더니즘 그 자체인 것으로 착각을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그들의 모습과 행동 등이 유행처럼 확산되면서 대중들은 예술을 통해 부각되는 모더니즘에 대한 수 많은 착각과 오해가 발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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